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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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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소개 및 역사

사립 세브란스 의학교로 정부의 정식 인가를 받은 후 병리학 전임교수가 처음으로 부임한 것은 1907년 영국 성공회 파송 선교의사인 H. H. Wei로서 그는 1908년 임상검사실을 신설하였고 7년동안 주로 학생교육을 담당하였다.

1911년부터는 미국 북장로회에서 파송된 R.G.Mills가 병리학 연구와 교육에 참여하였고 1912년에 세브란스병원이 증축되고 1917년에는 세브란스 연합 의학전문학교로 발전하면서 2학년 교과과정으로 병리학의 본격적인 강의가 시작되었다.

1927년에는 尹日善이 우리나라 병리의사로는 처음으로 본교에 부임하여 학생교육과 연구뿐만 아니라 진료에 병리조직 진단법을 도입하여 우리나라의 각종 질환에 대한 병리학적 진단을 실시하였다. 1931년 崔棟이 조교수로 부임하여 1945년까지 재직하면서 주로 법의학을 가르쳤다. 尹日善이 1945년 서울대학교로 전직함에 따라 1938년에 본교를 졸업한 李應洌이 병리학 교육과 연구활동을 이어 받았으나 불행하게도 1947년 순직하고 1942년 졸업생인 金東式이 1949년부터 학생 교육과 연구활동을 하였다.

6.25동란 중에는 미8군 후송병원 병리군의관인 Meriwether, Johnstone, McGilberry가 학생강의를 지원하였으며 1954년 金東式이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와 교실 정비를 시작하였으며, 1955년에는 미8군 병리군의관인 Leopold G. Koss가 병리조직진단업무를 지원하였는데 그는 나중에 세계적인 세포병리학자가 된다.

1957년부터 1960년까지 金東式이 미국유학을 하였고 본교 출신으로서 미국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金淳應과 崔丙昊가 각각 1958년과 1959년에 병리학 전임교수로 부임하였다. 金淳應과 崔丙昊는 학생교육과 병리조직 진단업무에 진력하면서 교실재건의 기틀을 잡기 시작하였고, 1960년에 미국유학에서 돌아온 김동식은 임상검사실을 흡수하여 병리학교실에 해부병리과와 임상병리과를 두는 본격적인 교실체제를 이룩하게 된다.

1945년∼1960년사이에 張鍾完, 金淳應, 최인준 등이 병리학 조교로 입문한 바 있으며, 李應洌, 洪黃龍, 金東式, 李鎬永, 金淳應 및 崔丙昊가 장단기간 병리학 전임교원으로 근무하였고 具國會, 玄鳳學, 崔善鶴, 朴喜榮, 李三悅등이 임상검사실 전임교원으로 잠시 동안 일하였다.

이상과 같이 1960년 이전에는 尹日善, 李應洌, 洪黃龍 및 金東式이 교실을 책임 맡아 운영하였으며, 1960년에는 金東式이 임상검사실을 흡수하여 본격적인 병리학 교실체제를 갖추고 그후 1976년까지 주임교수로 재직하였다. 1963년에는 李有福(1953년 졸업)과 최인준(1956년 졸업)이 새로운 교수진으로 부임함으로써 金東式, 金淳應, 崔丙昊, 李有福, 최인준 등 5명의 해부병리 전임교원과 1958년부터 본교 임상검사실에서 전임으로 재직하던 李三悅(1948년 졸업), 1961년 새로 부임한 李鍾武(1954년 졸업) 등 2명의 임상병리 전임교원을 확보하게 되어 1960년대 초에 이미 우리나라에서 가장 훌륭한 병리학교실이 되었다.

崔丙昊와 金淳應이 1965년과 1966년에 각각 도미하게 되면서 후임으로 李用雨(1956년 졸업)가 1967년에, 金智煥이 본교실에서 정규 조교과정을 수료함과 동시에 강사발령을 받게 되었다. 본 교실에서 병리학 조교겸 전공의 정규과정을 수료한 崔弘悅과(1968년 졸업) 曺湘昊(1968년 졸업)가 군복무을 마치고 전임교원으로 임용되었으나 崔弘悅과 曺湘昊는 곧 미국유학을 위해 사직하였으며, 이보다 앞서 李用雨와 金智煥도 도미하였다. 1973년 귀국한 최인준의 주도하에 형광현미경과 전자현미경을 이용하는 면역병리 및 신장병리 연구가 시작되었다.

이러한 연구활동의 결과 1960년∼1976년 사이에 약 75명의 의학박사를 배출하였다.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교수들에 의해 진단병리 분야의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김동식이 1976년 암센타원장으로 취임하면서 李有福이 주임교수로서 1976년 3월부터 1984년 2월까지 교실을 이끌어 온 시기에는 14명의 의과대학 졸업생이 조교 겸 전공의로 병리학교실에 입문하였다. 1970년대 후반에는 본 교실에서 조교/전공의 과정을 수료하고 군복무를 마친 盧在胤(1969년 졸업), 朴贊一(1970년 졸업), 崔鎭國(1970년 졸업) 및 李廣吉 (1971년 졸업)이 차례로 전임교수직에 임용되었다. 1982년에는 金泰丞(1974년 졸업)이 전임강사로 임용되었으나 1년 후 원주의과대학에 파견근무중인 李廣吉과 교체되었으며, 1983년에는 미국에서 오래동안 신경병리학을 연구하고 있던 成周皓(1952년 졸업)가 본교 학장으로 부임하면서 병리학 교수직을 발령받았다.

1983년에는 朴贊一이 간질환에 관한 연수를 위해 도미하고, 영동세브란스병원이 개원됨에 따라 鄭雨禧(1979년 졸업)가 연구강사로 과장서리를 맡게 되었으며, 1987년 전임교원으로 발령받은 그는 지금까지 13년간 영동세브란스병원 병리과장의 직책을 수행하고 있다.

이 기간에는 효율적 학생교육을 위해 주력하는 한편 임상 각과와의 증례토의와 교실 세미나를 통하여 해부병리 전공의교육을 체계적으로 활성화하고 임상과 전공의의 위탁교육도 시작하였다. 연구활동으로는 한국인 종양실태에 대한 연구와 면역병리 및 신장병리에 관한 연구가 계속 이어졌으며, 전자현미경을 이용한 간 및 폐손상 기전에 관한 연구와 세포유전학분야의 연구도 지속하여 약 30명의 의학박사를 배출하였다. 1983년 8월에는 병리학교실의 체계를 확립하고 그 발전을 위해 평생을 바친 金東式이 정년퇴임하여 명예교수로 추대되었으며, 1984년 3월에는 최인준이 李有福의 후임으로 교실 주임교수직을 맡는다.

1984년 朴贊一이 미국 연수 후 귀국한 반면 1985년∼1987년 사이에 韓恩淑, 金貞淑, 成周皓가 각각 사직하고, 1987년에는 金泰丞이 미국유학을 떠났다. 그동안 林來麟(1977년 졸업), 申東煥(1978년 졸업), 鄭雨禧(1979년 졸업), 鄭賢珠(1981년 졸업), 楊宇翼(1981년 졸업), 李基汎(1982년 졸업) 등이 차례로 전임강사로 임용되었으나 그 중 林來麟과 李基汎은 곧 순천향의대 및 신설 아주의대로 전직하였고 鄭賢珠는 영동세브란스병원 전임교원으로 일하게 되었으며, 원주의대에 파견근무하던 金泰丞이 도미 유학하게 됨에 따라 朴贊一과 申東煥이 1년씩 원주의대에 파견근무를 하였다.

1986년 6월 임상병리과가 임상병리학교실로 발전하여 독립하게 된 것은 이 기간에 있었던 중요한 사건이다. 이기간에도 신장질환 및 면역질환연구가 그 폭을 더욱 넓혔고 장기성숙에 관한 연구도 지속되었으며, 특히 세부전공분야에 관한 미국연수를 추진한 바 李廣吉, 鄭雨禧 등이 미국유학 후 귀국하여 최인준, 朴贊一과 함께 신장, 간, 피부 및 소아질환과 세포병리에 관한 연구를 활발하게 수행하였다. 뿐만 아니라 유세포측정과 면역조직화학적 기법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병리학적 진단방법을 현대화하였으며, 약 20명의 의학박사를 배출하였다.

또한 종래의 정규 교실세미나 및 임상과와의 증례토의외에 초독회, topic review 등을 추가하여 전공의교육 program을 공고히 하였으며, 연구강사제도의 활성화에 따라 총 7명의 연구강사를 채용하여 교육함으로써 보다 수준 높은 병리학자 또는 병리전문의를 양성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학생교육에 있어서는 quiz를 자주 시행하는 한편 case study를 통한 문제해결식 교육을 시도하였다. 1990년 崔인峻이 주임교수 임기를 마치게 됨에 따라 朴贊一이 후임으로 교실 책임을 맡게 되었다.

이 기간동안에도 李漢榮(1983년 졸업), 曺湘昊(1968년 졸업) 및 趙南熏(1986년 졸업)이 전임교원으로 보강되었으나 李漢榮은 임용직 후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병리의사로 전직하였다. 1987년 군복무를 마친 후 원주 의대 전임교수직으로 임용되어 4년간 봉직한 金浩根(1980년 졸업)이 1991년 연세의대 영동세브란스병원으로 전보되고 楊宇翼이 1년 반동안 파견근무를 하였다.

1992년 8월에는 본교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진단병리분야의 발전을 주도하고 본교 의과대학장 및 의무부총장을 역임한 李有福이 정년퇴임하여 명예교수로 추대되었다. 1990년 9월에는 金泰丞이 신경병리에 관한 미국연수를 마치고 귀국한 바 있고 申東煥, 鄭賢珠, 金浩根 및 楊宇翼도 각각 폐, 신장, 위장관, 림프망내계 질환에 관한 미국연수 후 속속 귀국하였다. 또한 1975년부터 1년간 본교실에서 전임강사로 재직한 후 도미하여 심폐분야 전문 병리의사로 활약하고 있는 曺湘昊가 18년만인 1994년에 다시 본교 교수로 부임하였다.

특히 金浩根은 위장관질환의 병리외에 분자병리학을 연수하여 1995년 교실내에 이 분야의 연구를 위한 실험실을 갖추게 되었으며, 이를 위해 1995년에 趙南熏이 영동세브란스병원의 金浩根과 교체 근무하게 된다. 1992년부터는 영동세브란스병원에서도 전공의를 채용하기 시작하여 6년동안 본교실의 조교/전공의과정에 입문한 이는 모두 14명이며, 연구강사 제도를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총 11명이 1∼3년간 연구강사로 재직하면서 학생교육, 전공의교육, 연구활동 및 진단병리업무에 참여하였다.

이 기간에는 교실 공동연구비 조성과 연구공간 확보를 추진하였으며, 의료원 업무전산화계획을 추진하기 시작하면서 병리진단업무의 전산화가 이루어졌고, 법의학과가 신설되었다. 지속적인 교수진 보강, 그리고 이들 대부분이 1∼3년씩 특정 세부분야에 관한 미국연수 후 귀국함에 따라 신장병리, 간담도계병리, 피부병리, 세포병리, 소아병리, 신경병리, 심폐병리, 위장관병리 및 림프망내계병리 등 9개 중요 장기별 분야에 1∼2명의 전문 병리교수진을 확보하게 되었다. 연구분야도 상기 9개 세부전문분야에 관한 연구들이 미세구조학, 면역조직화학, 효소조직화학, 유세포분석학, 분자생물학 등의 연구기법을 이용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전공의 교육에 있어서는 초독회와 topic review를 더욱 활성화하는 한편 교실내 주간활동에 육안소견토의, 세포병리교육 등을 추가 하였고, 불충분한 부검경험을 보충하기 위해 국립과학수사 연구소에 단기 위탁교육을 시행하기 시작하였다. 1996년 2월에는 朴贊一의 주임교수 임기만료에 따라 曺湘昊가 주임교수로서 교실책임을 맡게 되었고, 평생을 병리학과 병리학교실의 발전을 위해 헌신한 최인준이 정년퇴직하여 명예교수로 추대되면서 33년간 몸 담아 온 교실을 떠났으며, 지난 2년간 미국과 일본에서 간담도계 병리와 미세구조를 연수한 朴永年(1987년 졸업)이 3월 1일부로 전임교원에 보강되었다. 1998년 3월 부터는 李廣吉이 연세원주의대로 그리고 洪淳遠이 신촌으로 전보되었다. 1998년 3월 부터 趙南熏이 산부인과 병리 연수를 위해 도미하고 1998년 5월에 朴永年이 영동 세브란스병원으로 파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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